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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 영화 리뷰 (여성 권력, 클래식 음악, 몰락의 서사)

by 마이클 연 2025. 5. 6.

타르 영화포스터

『타르(TÁR)』는 토드 필드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고,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한 2022년작 영화로, 가상의 세계적인 여성 지휘자 ‘리디아 타르’의 성공과 몰락을 다룬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성별, 권력, 예술성과 도덕성의 충돌이라는 복잡한 주제를 섬세하면서도 차갑게 그려냅니다. 여성 캐릭터가 권력의 정점에 선다는 드문 설정 속에서, 타르의 무너짐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현대 사회와 예술계의 권력 구조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리디아 타르: 여성 권력의 이면

리디아 타르는 세계적 명성을 지닌 지휘자이자 작곡가로, 남성 중심 클래식 음악계에서 정점에 오른 인물입니다. 그녀는 철저히 프로페셔널하며, 지적인 언어로 예술과 권력에 대해 토론합니다. 이 인물은 단순히 ‘성공한 여성’의 상징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인물이 갖게 되는 책임과 유혹, 도덕적 경계의 모호함을 상징합니다. 타르의 권력은 그녀의 예술성에서 비롯되지만, 동시에 그녀의 인간적 오만과 통제욕에서 비롯된 문제들도 함께 드러납니다. 영화는 ‘여성도 권력의 구조 안에서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조명합니다. 이 과정에서 성별은 특권이나 면죄부가 아닌, 또 하나의 구조적 변수로 작용합니다. 이는 단순히 “여성이 남성과 같은 위치에 섰을 때 더 나은가?”라는 질문에 그치지 않고, “권력 그 자체는 누구에게도 안전하지 않다”는 보편적 메시지로 확장됩니다.

예술성과 도덕성의 충돌

『타르』는 예술의 순수성과 예술가의 인격이 분리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타르는 뛰어난 지휘자이자 해석가로서 음악계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그녀의 인간적 결함과 윤리적 실수가 점차 밝혀지면서 그 모든 예술적 성취가 흔들리게 됩니다. 이 영화는 ‘작품은 작가를 넘어선다’는 전통적인 예술론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던집니다. 관객은 타르의 음악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인정하면서도, 그녀가 보여주는 오만과 권력 남용 앞에서는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 불편함은 단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예술계 전반의 구조적 위선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타르』는 뛰어난 예술가도 결코 완벽하지 않으며, 예술이라는 명분이 도덕적 책임을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이는 특히 예술가의 ‘사생활과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현재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더욱 큰 울림을 줍니다.

케이트 블란쳇의 압도적 연기와 여성서사의 깊이

이 영화가 강한 인상을 남기는 가장 큰 이유는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력에 있습니다. 블란쳇은 타르라는 인물을 냉정하면서도 인간적인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복합적 존재로 완벽히 표현해 냈습니다. 그녀의 눈빛, 말투, 몸짓 하나하나가 지휘자이자 권력자로서의 타르를 생생하게 체현합니다. 그녀는 이 역할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습니다. 블란쳇의 타르는 ‘강한 여성’의 고정관념을 넘어서, 권력을 쥔 인간 그 자체의 복잡성과 불안정함을 보여주는 입체적 캐릭터입니다. 또한 이 영화는 기존 여성서사가 가진 피해자적 시선을 넘어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의 몰락을 통해 더 깊은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타르의 실패는 단순한 심판이 아니라, 권력과 인간성의 근본적 충돌에서 비롯된 비극으로 읽힙니다.

『타르』는 여성이 권력의 중심에 서 있을 때 생기는 윤리적 딜레마와 예술가의 책임에 대해 치열하게 묻는 영화입니다. 케이트 블란쳇의 명연기와 더불어, 냉정하고도 지적인 서사 구조는 관객에게 오랜 여운을 남깁니다. 예술, 성별, 권력에 대한 복합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을 통해, 단순한 감상 이상의 성찰을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