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 걸(Working Girl)》은 1988년 마이크 니콜스(Mike Nichols) 감독이 연출한 로맨틱 드라마이자 사회적 페미니즘 영화로, 단순한 ‘성공 이야기’를 넘어서 여성의 사회 진입과 자아실현, 계급 이동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탐색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인물은 테스 맥길(Tess McGill), 그리고 그 역할을 맡은 멜라니 그리피스(Melanie Griffith)입니다. 당시 기준으로도 신선했던 이 여성 캐릭터는 상사의 권력과 사회적 고정관념, 성차별을 정면으로 돌파하며, ‘워킹 우먼’의 이상적인 롤모델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작품은 제6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포함 총 6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주제가 “Let the River Run”은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하며 영화의 메시지를 음악으로까지 확장시켰습니다.
줄거리: 사무실에서 출세까지, 진짜 실력으로 승부하다
테스 맥길은 뉴욕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는 젊은 여성입니다. 그녀는 남다른 아이디어와 업무 능력을 갖췄지만, 낮은 학벌과 외모, 사투리 등으로 인해 회사에서는 늘 ‘도우미’ 이상의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그녀는 상사의 희롱을 견디고, 기회가 올 때마다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새로운 여성 상사 캐서린 파커(시고니 위버)의 비서로 발령받습니다. 처음엔 서로를 존중하는 듯 보였지만, 곧 캐서린이 테스의 사업 아이디어를 훔쳐 자신의 것으로 발표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캐서린이 스키 사고로 장기 입원하게 되자, 테스는 그 기회를 잡아 스스로를 ‘임시 간부’로 꾸미고, 실제 사업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잭 트레이너(해리슨 포드)와 협업하며 점차 자신감을 얻고, 결국 캐서린의 사기 행위가 밝혀지면서 테스는 정당하게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영화는 테스가 원래 자리였던 비서직을 넘어, 스스로의 위치를 스스로 설계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자격 없는 자리’란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멜라니 그리피스, 겸손과 강단이 공존하는 캐릭터를 완성하다
멜라니 그리피스는 테스 맥길이라는 캐릭터를 단순한 ‘출세 지향적 여성’이 아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선택하는 한 인간으로 그려냅니다. 그녀의 연기는 가식 없고 진솔하며, 테스의 성장 과정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만듭니다. 처음엔 수줍고 자신감이 없지만, 점점 스스로를 믿고 주장하며 세상 앞에 나서는 과정은 많은 여성 관객에게 공감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 진실이 드러나고 테스가 진짜로 기회를 얻는 순간, 그녀는 승리의 기쁨보다는 두려움과 책임감을 더 크게 느낍니다. 이 장면에서 멜라니 그리피스는 억지 감정 없이 담백하게 웃으며, 한 시대 여성의 현실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전달합니다. 그녀의 연기는 ‘너무 평범해서 특별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끌어올리는 힘이 있습니다.
성공신화 아닌 여성 현실주의 드라마
《워킹 걸》이 단순한 ‘성공 신화’ 영화로만 소비되지 않는 이유는, 이 영화가 여성의 사회 구조 속 위치와 차별, 생존 방식 등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테스는 단지 똑똑해서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비판과 고립, 실망도 감내해야 했습니다.
이 영화는 1980년대 후반 미국 사회의 여성 노동시장과 성차별 문제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특히 여성 상사(캐서린)와 여성 부하(테스) 사이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연대의 실패와 경쟁 구조는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은 여성도 시스템의 일원으로 올라가기 위해 ‘남성화’되어야 한다는 비극적인 구조적 모순도 함께 보여주며, 단지 통쾌한 성공기가 아니라, 시스템 내부에서 여성이 겪는 현실적 갈등을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1980년대 뉴욕, 여성의 꿈이 움직이는 무대
이 영화는 뉴욕이라는 도시를 무대 삼아, 여성의 꿈과 도전을 강렬하게 시각화합니다. 강변을 달리는 배경 음악, 고층 빌딩 사이를 걷는 테스,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눈빛 교환 등은 그녀가 공간 속에서 점점 존재감을 넓혀가는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사무실’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억압과 통제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그녀가 스스로를 실현해 내는 실험장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 시퀀스는 특히 인상적입니다. 출근길에 사람들 속에서 묻혀 있던 테스는 마지막 장면에서 개인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으며 ‘나만의 자리’를 얻게 됩니다. 그 공간은 그녀에게 단지 직장이 아니라, 존재로서의 증명이자 다음 챕터를 향한 문입니다.
일하는 여성’이 아닌, ‘일을 주도하는 여성’의 서사
《워킹 걸》은 1980년대 여성들의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이상적인 비전을 제시한 작품입니다. 테스는 단지 ‘일하는 여성’이 아니라,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시스템에 균열을 낸 ‘변화의 주체’입니다. 멜라니 그리피스는 이 복잡한 감정과 사회적 위치의 변화를 담백하게 표현하며, 여성 캐릭터의 가능성을 확장한 배우로 기억됩니다.
만약 지금 당신이 ‘내가 내 자리에 어울릴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면, 《워킹 걸》의 테스 맥길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자격은 누가 주는 게 아니야. 내가 스스로 증명하는 거지.” 여성의 가능성과 자율성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영화는 여전히 뜨겁고 유효한 응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