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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Chicago, 2002) 영화 리뷰-욕망과 쇼비즈니스의 무대

by 마이클 연 2025. 4. 26.

시카고 영화포스터

《시카고(Chicago)》는 2002년 롭 마샬 감독이 연출하고, 1920년대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미국 사회의 쇼비즈니스적 광기, 부패한 언론, 그리고 인간 욕망의 본질을 화려하고 대담하게 풍자합니다. 특히 르네 젤위거(Renée Zellweger)와 캐서린 제타 존스(Catherine Zeta-Jones)는 각기 다른 여성상의 상징으로 등장하여, 주체적이면서도 복합적인 여성 캐릭터를 완성합니다. 이 작품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6개 부문을 수상하며 뮤지컬 영화 부흥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여성 배우들이 서사의 중심을 완벽히 이끄는 드문 대작으로 기록됩니다.

줄거리 요약: 범죄와 쇼비즈니스, 그리고 여성의 자기 연출

1920년대, 재즈가 울려 퍼지고, 언론과 대중이 범죄를 쇼로 소비하던 시대. 록시 하트(르네 젤위거)는 무명 가수로 스타가 되는 꿈을 꾸지만, 불륜 상대에게 배신당하고 충동적으로 그를 살해합니다. 체포된 록시는 시카고 여성 교도소에 수감되고, 그곳에서 이미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벨마 켈리(캐서린 제타 존스)를 만나게 됩니다. 벨마 역시 살인을 저질렀지만, 언론 플레이와 변호사를 통해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록시는 교활한 변호사 빌리 플린(리처드 기어)의 도움으로 언론을 조작하며 대중의 관심을 얻기 시작하고, 둘 사이에는 은근한 경쟁과 협력이 얽힙니다. 그러나 대중의 관심은 언제나 변덕스럽고, 벨마와 록시는 생존과 명성을 위해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결국 손을 잡게 됩니다. 영화는 살인마가 스타가 되고, 정의보다 쇼가 우선되는 세상을 블랙 코미디로 그리고 있습니다.

르네 젤위거 – 록시 하트, 순진함과 계산의 아이콘

르네 젤위거는 록시 하트를 통해 '순진한 욕망'과 '냉정한 계산'을 동시에 품은 복합적인 인물을 완성합니다. 초반의 록시는 단순한 쇼비즈니스의 희생양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대중 심리를 꿰뚫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능동적인 인물로 변모합니다.

르네 젤위거는 노래와 춤, 연기를 모두 소화하며, 록시의 어설프고 귀여운 외면 뒤에 숨겨진 야망과 허영심을 절묘하게 드러냅니다. 특히 "Roxie" 뮤지컬 넘버 장면에서는 자신이 상상 속 스타가 되어 환호받는 장면을 연기하는데, 이때 젤위거의 표정과 몸짓은 캐릭터의 이중성을 완벽히 시각화합니다. 록시는 순진하거나 악랄한 인물이 아니라, 시대의 욕망과 생존 본능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 같은 존재입니다.

캐서린 제타 존스 – 벨마 켈리, 카리스마와 생존 본능의 화신

캐서린 제타 존스는 벨마 켈리를 통해 무대 장악력을 지닌 진정한 쇼우맨이자, 치열한 생존자인 캐릭터를 구현합니다. 벨마는 언론 플레이를 능숙하게 활용하며, 자신을 '피해자'이자 '스타'로 포장하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이면에는 대중의 무관심에 대한 두려움과 명성을 잃는 것에 대한 깊은 불안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캐서린 제타 존스는 "All That Jazz" 오프닝 장면에서부터 압도적인 무대 장악력과 카리스마를 선보이며, 벨마 켈리라는 인물을 단순한 악녀가 아닌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여성으로 만듭니다. 그녀의 춤과 노래, 표정은 벨마의 자신감과 절박함을 동시에 표현하며, 벨마와 록시의 복잡한 경쟁 구도를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듭니다.

여성 주체 서사의 전복 – 욕망과 선택의 주인공들

《시카고》는 여성들이 단지 수동적으로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고, 욕망을 인식하고 조종하는 능동적 주체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록시와 벨마는 둘 다 대중의 환호를 욕망하지만, 그 환호를 얻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연출하고, 세상의 룰을 이용합니다. 이들은 희생자도, 단순한 악녀도 아니며, 시대가 요구하는 '쇼'의 논리를 가장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인물들입니다.

특히 영화는 '진실'이나 '정의'보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더 중요시되는 사회의 속성을 풍자하면서, 그 안에서 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교묘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입니다.

음악과 연출 –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다

《시카고》는 독특하게도 현실 장면과 뮤지컬 판타지 장면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방식을 취합니다. 등장인물들의 내면 심리와 욕망은 화려한 뮤지컬 무대 위에서 시각화되고, 현실은 어둡고 차갑게 그려집니다. 이로 인해 영화는 관객에게 ‘현실보다 환상이 더 진실하다’는 역설적 메시지를 던집니다.

롭 마샬 감독은 극 중 넘버들을 이야기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뮤지컬 영화의 매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Cell Block Tango"나 "Nowadays" 같은 명장면은 시각적 스타일과 감정 표현을 동시에 완성하며, 영화의 리듬을 탁월하게 이끕니다.

《시카고》, 욕망과 생존의 쇼를 지배한 여성들

《시카고》는 단순한 뮤지컬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여성들이 자신의 욕망을 자각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세상을 연기하고 조종하는 이야기입니다. 르네 젤위거와 캐서린 제타 존스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생존극을 완성하며, 스크린 위에서 여성 주체성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결국 《시카고》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세상은 정말 진실을 원하는가, 아니면 좋은 쇼를 원하는가?" 이 질문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리고 록시와 벨마는 대답합니다. "쇼를 원하지, 그리고 우리는 그 쇼를 완벽하게 해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