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페이버릿』은 18세기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여왕과 그녀의 두 여성 측근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 싸움과 감정의 교차를 그린 블랙 코미디입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특유의 기괴하고 미학적인 연출 아래, 여성 캐릭터들의 권모술수, 애증, 동맹이 교차하며 매우 독특한 여성 중심 정치 드라마로 완성됐습니다. 왕권과 궁중의 미묘한 역학 구조 속에서, 여성들이 권력을 쟁취하고 지키기 위해 벌이는 심리전은 그 어떤 남성 중심 정치극보다도 복잡하고 매혹적입니다.
세 여성 캐릭터의 역학 관계와 권력의 민낯
영화의 중심에는 세 명의 주요 인물이 있습니다: 권력을 쥐고 있지만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 왕의 최측근이자 실질적인 정권을 좌우하는 사라(레이철 와이즈), 그리고 몰락한 귀족 출신으로 야심 찬 신입 시녀 애비게일(엠마 스톤). 이 세 인물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원하고 행사합니다. 사라는 정무와 국정에 직접 개입하며 여왕을 조종하려 하고, 애비게일은 처음엔 수동적인 듯 보이지만 점차 교묘한 전략으로 사라를 밀어내고 여왕의 신임을 얻습니다. 이 세 여성의 관계는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애정과 지배, 욕망과 연민이 얽힌 매우 입체적인 감정 구조로 형성됩니다. 영화는 여성이 권력의 중심에 섰을 때 벌어지는 정치 게임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남성들이 주도하던 정치극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관점—감정, 언어, 사적인 욕망의 개입—을 중심에 둡니다. 이 과정을 통해 영화는 ‘권력’이라는 개념이 누구에게나 공통된 본능임을 드러냅니다.
시대극을 탈바꿈시킨 파격적 연출
『더 페이버릿』은 단지 고증에 충실한 시대극이 아닙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와이드 앵글 렌즈, 기묘한 카메라 이동, 파격적인 음악 사용 등을 통해 전통적인 영국 궁정극의 분위기를 탈피하고, 현대적인 감수성과 관점을 부여합니다. 고풍스러운 의상과 궁정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고전적이지만, 대사와 장면 구성은 현대적이고 때론 조롱조차 담고 있습니다. 캐릭터 간의 대사는 권위적이지 않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직설적이며, 욕망과 조롱이 뒤섞인 톤으로 전개됩니다. 이 파격적인 스타일은 시대극을 지루하다고 느끼는 관객에게도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또한 페미니즘적 해석이 가능한 연출이 돋보입니다. 예를 들어, 사라와 애비게일이 여왕의 애정을 두고 경쟁하는 장면들은 단순한 삼각관계가 아니라, 애정을 수단으로 권력을 얻고자 하는 구조적 현실을 드러냅니다. 여성들이 사랑과 권력을 교환해야만 생존 가능한 궁정 사회를 비판적으로 풍자합니다.
여성 주연 3인의 연기력과 입체적 여성 서사
이 영화는 명실공히 여성 연기의 총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올리비아 콜맨은 앤 여왕의 연약함과 잔혹함, 외로움과 권력욕을 동시에 보여주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녀는 단순한 피해자도 아니고, 냉철한 권력자도 아닌, 감정과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적인 여왕을 완벽히 그려냈습니다. 레이철 와이즈와 엠마 스톤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캐릭터에 깊이를 더합니다. 사라는 오랜 권력을 지닌 자의 자신감과 불안정을 동시에 보여주고, 애비게일은 순진한 얼굴 속에 야망과 잔혹함을 숨긴 다면적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들의 갈등은 단순한 경쟁 구도가 아닌,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이 살아남기 위해 취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선택들을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이처럼 『더 페이버릿』은 여성이 주체가 되어 욕망하고 싸우는 서사를 통해, 기존 남성 중심 영화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입체적 여성 서사를 구현했습니다.
『더 페이버릿』은 역사극이라는 장르 속에서 여성의 권력, 경쟁, 연대, 감정을 독창적으로 풀어낸 수작입니다. 파격적 연출, 강렬한 연기, 감정의 층위가 복잡하게 얽힌 이 영화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정치, 감정, 페미니즘 모두에 관심 있다면 반드시 감상해보시길 추천합니다.